치매라는 병 2번째 이야기

지난주 토요일 세째 와 네째 처제들의 울고불고 막무가네?로
어쩔수 없이 장모님을 다시 요양원에서 댁으로 모셨습니다.

연휴라서 가능 했었습니다.
어째뜬 5월5일 내일까지는 처제들이 돌볼수 있다고 고집 했으니까
사실 요양원 병문안 간다고 한거 안말린게 실수긴 하네요
근데 5월6일 부터 어떻게 한다는건지 알수가 없습니다.
아내 말로는 둘이서 교대로 직장 휴가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데 언제까지 이어질수 있을런지

두딸들 입장에선 억장이 무너질 일것 이었을 겁니다.
병문안 이라고 가보니 어머님이 뭔가 두려움에 떠는 눈치도 보였고
자식들도 잘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나빠졌으니
사실 몇주전 길에서 넘어지셔서 팔 다쳐서 작은 종합병원 입원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식들 다 알아보고
사리분간 잘하셨고 하셨는데 병원에 입원하면서 구속, 고립된 거에대한 충격이 크셨는지
치매병세가 급격하게 나빠졌습니다.
이렇게 까지 병세가 나빠지리라 생각치도 못했던 가족들은 병원을 원망하게 됩니다.

사실 예전에 이런말이 있었어요
극성으로 살수록 늙어서 치매에 걸려 고생한다는 뭐 그런 떠도는 얘기가
네 사실 장모님은 극성을 넘어서서 대단 하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극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자식들이 안스럽다고 부끄럽다고 제발 이젠 그만좀 하시라고 해도 나이 70넘어서 까지도 은행청소 하셨고
그마저 늙어 기력이 없어 집에 계실때도 끝없이 동네주변 , 다니던 은행주변 에서 폐종이, 깡통,병 등 고물 줏어서
고물상에 리어카 끌고가서 팔고 하실정도로 정말 억척을 넘어서는 삶을 사셨습니다.
5형제가 매달 용돈모아 드려도 그돈다 길건너에 있는 새마을금고에 다 쏟아 넣으셨고요
치매 판정 받은지 3년이 되가는데도 삶에 대한 의지는 살아남은지라 끝까지 동네고물을 줏어다 집마당에 차곡차곡
쌓아 두셔서 저번달에 그거 치우느라 이틀을 고생했습니다.

정말 우리 윗세대 분들은 정말 대단하게 아픈 삶들을 사셧습니다.
모두가 다 정말 우리가 존경해야 할 세대 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어렵게 세상을 살았다고 생각 하겠지만 그들을 넘어서는 삶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이정도 살게 해준 분들 이니까요


내가 아주 어렸을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살던 동네중에서 특히 산동네라고 불리웠던곳에 놀려 다녔던 기억이 가물가물 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건 볏짚 가마니로 입구를 막았던 루핑(콜타르 인가 로 바른종이) 집과 구덩이를 파고 덮은 집
그리고 모든집이 판자집 이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인천 외곽에 있던 동네라 동네 자체가 가난했는데 산동네는 더욱더 그랬습니다.
지금 인하대 의과대학이 들어온 거로 알고 있는데(가본지 오래되서 잘모름)
물하나 길러 산밑으로 내려와서 물지게에 지고 올라가는 것도 보았고 정말 간난한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많이 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이정도 지금 살고 있으면 정말 만족할 만한 삶이 된거 같은데 사람들의 욕심은 끝이 없고
물론 그게 인류문명을 발달 시키는 동력이 되었겠지만
그런 가난한 삶을 오로지 자식새끼들은 배고프게 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고난한 삶을 이겨내며 살아온 분들입니다. 정말 감사 해야지요

장모님의 삶을 생각 해보다 엉뚱한 얘기를 해버렸지만
아무튼 존경해야 할 삶을 사신분 입니다.
삶의 끝자락에 이제 가끔은 자식들도 못 알아 볼정도로 병이 깊어 지셨으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근데 치매병은 가족병이라는 말도 있듯이
막상 장모님 병이 깊어지니 가족들도 근심이 깊어 집니다.
각자 평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중 갑자기 돌부리에 넘어진 상황입니다.
누군가 기존에 살던 삶을 버리고 장모님을 옆에서 케어하거나 요양병원에 맞기거나 둘중에 하나인데
다들 자기 생활, 가족이 있는데
쉽지 않은 선택지가 가족들 앞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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